지렁이는 왜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나와 죽어 있을까?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진실 (2부)

1부에서는 지렁이가 비 오는 날 밖으로 나오는 이유와 보도블록 위에서 죽게 되는 과정을 살펴봤다. 자료를 찾아볼수록 어릴 때부터 믿어왔던 '익사설'이 마음에 걸렸다. 정말 그게 전부일까. 2부에서는 그 의문부터 풀어보기로 했다.
"익사하지 않으려고 나온다"는 말, 정말 맞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설명이 있다. "비가 오면 땅속에 물이 차서 지렁이가 숨을 못 쉬니까 밖으로 나온다"는 말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정확한 표현도 아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최근 생물학 연구에서는 이 설명을 '가능한 이유 중 하나'로만 다룰 뿐,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결정적 원인으로는 보지 않고 있었다.
이유를 더 들여다보니 의외의 사실이 나왔다. 지렁이는 피부로 호흡하고, 그 피부가 항상 촉촉해야 한다는 건 1부에서 이미 확인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물속에 들어가면 곧장 질식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물속에도 산소는 녹아 있고, 지렁이는 그 산소를 피부로 흡수할 수 있다. 물론 물속 산소량이 매우 적거나 오랜 시간 잠겨 있으면 문제가 되지만, 비가 왔다고 곧바로 익사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며칠 동안 물속에서 살아남은 지렁이의 사례도 보고된 적이 있다. 즉 비가 온다고 해서 지렁이가 "큰일 났다, 빨리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다급하게 행동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왜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나올까
답은 간단했다. 비가 오면 환경 자체가 이동하기에 너무 좋아지기 때문이다. 평소 지렁이가 흙을 뚫고 움직이려면 상당한 힘이 필요하지만, 비 오는 날에는 지표면 전체가 촉촉해지고 몸이 마를 일도 없으며 마찰도 줄어든다. 평소가 산을 넘는 일이라면, 비 오는 날은 갑자기 평평한 도로가 깔리는 셈이다. 이동 비용이 크게 줄어드니 많은 개체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렁이에게도 '부동산'이 있다
조금 재밌는 비유지만 사실에 가까웠다. 지렁이는 아무 곳에서나 살지 않는다. 습도, 유기물의 양, 흙의 부드러움, 산도(pH), 먹이 같은 조건에 따라 선호하는 장소가 따로 있다. 비가 오면 새로운 땅을 탐험할 기회가 생기고, 사람이 더 좋은 동네를 찾아 이사하듯 지렁이도 더 좋은 흙을 찾아 이동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 오는 밤마다 보도블록 위로 몰려나오는 지렁이들이 단순히 재난을 피해 도망친 게 아니라,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길을 잃을까
여기서부터 도시의 문제가 시작됐다. 자연에서는 숲에서 흙으로, 낙엽에서 다시 흙으로, 그리고 풀밭으로 환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도시는 다르다. 잔디에서 보도블록으로, 아스팔트에서 차도로, 다시 건물과 콘크리트로 이어진다. 지렁이는 흙 속에서는 방향 감각이 뛰어나지만, 보도블록 위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사방이 딱딱한 콘크리트라 파고 들어갈 수도 없고, 냄새도 익숙하지 않으며, 습도는 계속 떨어진다. 결국 앞으로만 계속 움직이다가 탈수되거나 끝내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 게 자료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지점이었다.
가장 무서운 순간은 해가 뜰 때
비 오는 밤은 지렁이에게 천국이지만, 아침은 정반대다. 새벽까지는 습도가 90~100%에 이르고 기온도 낮아 몸이 마를 걱정이 없다. 하지만 동이 트면 햇빛이 보도블록을 달구고 바람이 불면서 습도가 급격히 낮아진다. 피부의 점액이 마르기 시작하고, 피부 호흡이 어려워지며, 몸속 수분도 빠르게 증발한다. 결국 움직일 힘조차 잃는다. 우리가 출근길에 마주치는 지렁이 대부분은 밤새 살아 있다가 아침 햇살 속에서 서서히 탈수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풍경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새들이 비 그친 뒤 신이 나는 이유
비가 그친 다음 날, 참새나 까치, 비둘기, 직박구리, 까마귀 같은 새들이 땅을 부지런히 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그 이유도 지렁이에 있었다. 평소에는 흙 속 깊이 숨어 있어 찾기 어렵지만, 비가 오면 지표면 가까이 올라오고 보도블록 위에서는 숨을 곳조차 없다. 새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아침 식사인 셈이다. 그래서 비가 그친 다음 날이면 새들의 먹이 활동도 한층 활발해진다.
자동차라는 또 다른 위협
도시에서는 탈수보다 더 빨리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 바로 차량이다. 주차장이나 골목길, 자전거도로, 차도를 건너다가 밟히거나 타이어에 깔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비 오는 다음 날 도로 위에서는 수많은 작은 생명이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길에서 살아 있는 지렁이를 만나면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길에서 살아 있는 지렁이를 보면 도와줘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면 도와주는 편이 좋다. 다만 방법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까운 흙이나 화단으로 옮겨주는 것이다. 가능하면 촉촉한 흙 위에 놓아주고, 몸이 쉽게 손상될 수 있으니 너무 세게 잡지 않는다. 반대로 햇볕이 강한 곳에 그대로 두거나, 콘크리트 틈에 억지로 밀어 넣거나, 건조한 흙 위에 던지듯 놓는 행동은 오히려 생존율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다.
맨손으로 만져도 되는지도 궁금했는데, 대부분의 지렁이는 사람에게 해롭지 않다. 독도 없고 물지도 않는다. 다만 손에 비누나 세제, 화학물질이 묻어 있으면 지렁이 피부가 손상될 수 있으니, 만진 뒤에는 손을 깨끗이 씻어주면 충분하다.
단순한 듯 영리한 생존 감각
지렁이의 뇌는 매우 단순하지만, 환경을 감지하는 능력은 의외로 놀라웠다. 빛과 진동, 습도, 온도를 모두 느낄 수 있어서, 누군가 삽질하는 진동만 느껴도 급히 몸을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낚시 미끼로 자주 쓰이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됐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움직임도 크며 물속에서도 오래 버티다 보니, 붕어와 잉어, 메기, 송어, 배스 같은 다양한 어종에게 훌륭한 먹이가 된다. 자연에서도 새와 두더지, 개구리, 도롱뇽, 거북 등 수많은 동물이 지렁이를 먹으며 살아간다. 작고 흔해 보이지만, 먹이사슬 안에서는 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지렁이가 사라지면 생기는 일
별것 아닌 생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과학자들의 시선은 전혀 달랐다. 지렁이가 줄어들면 토양이 단단해지고, 공기가 잘 통하지 않게 되며, 낙엽 분해 속도와 미생물 활동도 함께 떨어진다. 결국 식물의 성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지렁이에게는 '토양 생태계의 엔지니어', '자연의 쟁기'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도시라는 거대한 미로
여기까지 자료를 살펴보고 나니, 처음 출근길에서 봤던 그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보도블록은 편리한 길이지만, 지렁이에게는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이나 다름없다. 흙도 없고, 숨을 곳도, 파고 들어갈 틈도 없다. 비 오는 밤 새로운 세상을 찾아 용감하게 길을 나섰던 지렁이에게, 도시는 너무도 가혹한 환경이었던 셈이다.
2부를 마치며
비가 온 다음 날 보도블록 위에서 마주치는 지렁이는 단순히 '비를 피하다 실패한 벌레'가 아니었다. 더 좋은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고, 짝을 만나고, 생존의 기회를 넓히려 했던 작은 생명이다. 다만 자연의 흙길 대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이어지는 도시에서는 그 여정이 종종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지렁이 한 마리도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낙엽을 분해하며 수많은 생물의 먹이가 되는,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작은 생명 하나가 자연 전체를 지탱하는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비 오는 다음 날의 그 익숙한 풍경도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다음 3부 예고
마지막 편에서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지렁이를 반으로 자르면 정말 두 마리가 될지, 눈도 귀도 없는 지렁이가 어떻게 위험을 알아차리는지, 비 오는 날 도로 위 지렁이가 유독 많은 이유를 다룬 최신 연구, 세계에서 가장 큰 지렁이의 크기,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지렁이 종류, 그리고 지렁이에 관한 흥미로운 오해와 진실까지 자주 묻는 질문들과 함께 완결편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호기심해결 > 생활 ; 생활 속 '왜?' (Life & Scie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어는 정말 양식이 안 될까? — 아무도 본 적 없는 물고기의 비밀 (0) | 2026.07.08 |
|---|---|
| [지렁이 이야기 3부] 지렁이는 왜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나와 죽어 있을까? (0) | 2026.06.30 |
| [지렁이 이야기 1부] 지렁이는 왜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나와 죽어 있을까? (0) | 2026.06.30 |
| 필리핀에서는 왜 얼음컵에 맥주를 마실까? (0) | 2026.06.29 |
| 짜장면의 비밀, 첨면장(甜麵醬) 이야기 (1) | 2026.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