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어는 정말 양식이 안 될까? — 아무도 본 적 없는 물고기의 비밀
여름 복날,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노릇하게 익어가는 장어구이. 달콤한 양념장이 발린 장어덮밥 한 그릇. 많은 사람들에게 여름 보양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장어일 겁니다.
그런데 젓가락을 들다 말고,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지 않나요?
"이거 다 자연산이래. 장어는 양식이 안 된다더라." "장어는 사람이 알 받아서 키울 수 없는 유일한 물고기래."
저도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파고들어 보니,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또 절반은 틀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장어 양식,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먹고 있는 장어도 대부분 양식장에서 자란 녀석들입니다. 다만 "완전양식"—그러니까 알부터 성체까지 사람 손으로 전부 만들어내는 일—은 아직 산업적으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반쪽짜리 진실이 생겼을까요? 그 답을 찾아가려면, 장어라는 물고기가 살아온 방식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 녀석의 인생이 좀 남다르거든요.
1. 여러분이 먹은 그 장어, 사실 양식 맞습니다
먼저 가장 흔한 오해부터 풀고 가겠습니다.
"양식이 안 된다니까 다 자연산이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시장과 식당에 풀리는 장어의 대부분은 양식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민물장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 양식 방식이 조금 독특합니다. 이름하여 축양(蓄養). 말은 어렵지만 과정은 단순합니다.
- 자연에서 아주 어린 장어—실뱀장어—를 잡아 온다
- 양식장에서 먹이를 주며 키운다
- 적당한 크기가 되면 출하한다
여기까지는 분명한 양식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의 첫 단추, 그러니까 "그 어린 장어를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입니다.
2. 모든 비밀은 이 투명한 실 한 가닥에 있다
양식업자들이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실뱀장어.
갓 변태를 마친 새끼 장어인데, 몸이 유리처럼 투명하고 실처럼 가늘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매년 겨울에서 봄 사이, 강 하구로 올라오는 이 실뱀장어를 잡아 양식장에 넣는 게 장어 양식의 시작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물고기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벌어집니다.
- 닭은 알을 받아 부화시키면 됩니다
- 연어는 인공 수정이 가능합니다
- 광어도 알부터 키울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장어는, 자연에서 태어난 어린 개체를 데려와야 합니다
즉 장어는 "키우는 건" 문제없는데, "태어나게 하는 것"이 아직 큰 산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려면, 이 물고기가 평생 딱 한 번 떠나는 여행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3. 평생 단 한 번, 수천 km를 헤엄쳐 가는 여행자
장어는 한자리에 눌러사는 물고기가 아닙니다. 민물에서 자라지만, 번식은 반드시 바다에서 합니다. 그것도 아주 먼바다에서요.
일본장어를 예로 들면 그 여정은 이렇습니다.
깊은 바다에서 태어난다 → 어린 시절 바다를 떠돌며 자란다 → 강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 민물에서 수년간 몸집을 키운다 → 그리고 다시, 태어났던 그 바다로 돌아가 산란한다
이 대장정을 **회유(回遊)**라고 부릅니다. 놀라운 건 이 여정의 스케일입니다. 한국과 일본 연안에서 자란 장어들이 향하는 산란장은 무려 태평양 깊은 곳, 마리아나 해구 인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생 딱 한 번의 산란을 위해, 장어는 그 먼 바다까지 헤엄쳐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다시 강까지 돌아오는 여정을 거쳐야 우리가 아는 그 장어가 됩니다.
4. 수백 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질문
"강에 사는 장어는 대체 어디서 태어나는 걸까?"
믿기 어렵겠지만 이건 인류가 정말 오랫동안 답을 못 찾은 질문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장어가 진흙에서 저절로 생겨난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과학이 발전하면서 장어도 물고기이고, 번식을 위해 바다로 나간다는 사실은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산란하는지는 여전히 안갯속이었죠. 산란 장소가 이렇게까지 깊고 먼바다인 걸 확인하기까지도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5. 그렇다면 지금은 왜 여전히 어려울까
과학기술이 이만큼 발전한 지금도, 장어의 완전양식은 왜 쉽지 않을까요. 이유를 하나씩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① 알과 새끼의 사육 환경을 흉내 내기가 너무 까다롭습니다. 장어는 깊은 바다에서 알을 낳는데, 이걸 인공적으로 재현하려면 수온, 수압, 염분 농도, 빛의 변화, 먹이 환경까지 통째로 맞춰줘야 합니다. 물 온도 하나 맞춘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② 갓 부화한 새끼의 먹이가 유별납니다. 이 시기의 장어는 흔히 보는 물고기 치어와는 완전히 다른,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라는 독특한 형태로 자랍니다. 몸이 투명하고 나뭇잎처럼 납작한 모습인데, 자연에서는 바닷속 미세한 생물을 먹지만 인공 사육장에서는 이걸 대체할 먹이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③ 성장 속도가 느립니다. 상품이 될 만한 크기까지 키우려면 보통 1년 이상이 걸리고, 자연 상태라면 훨씬 오래 걸립니다. 기술이 개발돼도 이 긴 시간만큼 비용 문제가 그대로 남습니다.
6. 일본은 정말 성공했을까?
장어 연구에서 가장 앞서 있는 나라 중 하나가 일본입니다. 장어 소비량이 워낙 많다 보니 오래전부터 완전양식 기술에 공을 들여왔고, 일본 수산연구·교육기구 등에서 실제로 알을 받아 부화시키고 성체까지 키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성공했다"와 "상업화됐다"는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지금 기술은 연구실에서는 가능하지만, 자연산 실뱀장어를 이용하는 기존 방식보다 경제성이 떨어집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 사이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몇 개 더 남아 있는 셈입니다.
7. 우리 식탁 위 장어는 결국 어디서 왔나
지금의 공급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자연산 실뱀장어 확보 → 양식장에서 성장 → 식당과 시장으로
이 구조 때문에 매년 실뱀장어 어획량에 따라 장어 가격이 크게 출렁입니다. 실뱀장어가 잘 잡히는 해에는 값이 내려가지만, 어획량이 줄면 장어 가격도 함께 뜁니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와 환경 변화로 실뱀장어 자원 자체가 줄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8. 장어가 비싼 진짜 이유
"장어는 키우기 어려우니까 비싸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습니다.
- 실뱀장어 가격: 양식의 출발점이 자연 채집이다 보니 이 비용이 가장 큽니다
- 긴 사육 기간: 출하까지 사료비, 관리비, 전기료, 인건비가 꾸준히 들어갑니다
- 까다로운 환경 관리: 장어는 수질 변화에 민감해서 산소 공급, 수온, 질병 관리에 계속 신경 써야 합니다
9. 만약 완전양식이 완성된다면
이 기술이 산업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꽤 큰 변화가 생길 겁니다.
자연 채집에 기대지 않는 안정적인 공급, 생산량 조절이 가능해지며 따라오는 가격 안정, 야생 장어 자원을 지킬 수 있는 생태계 보호, 그리고 종묘 생산이라는 새로운 수산 산업까지. 지금은 아직 먼 이야기지만, 방향은 분명히 그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10. 마지막 남은 양식의 난제
연어, 광어, 참돔, 송어. 우리는 이미 이런 물고기들을 알부터 안정적으로 키워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장어만큼은 여전히 인간에게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장어가 특별히 영리해서가 아닙니다. 수백만 년 동안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살아온 이 물고기의 삶의 방식을, 사람이 만든 작은 수조 하나로는 아직 완벽히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장어는 양식이 안 된다"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우리가 먹는 장어는 대부분 양식장에서 자란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점, 알과 치어를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완전양식은 아직 경제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장어는 그저 흔한 물고기가 아닙니다. 태어난 곳을 향해 수천 km를 되짚어가고, 평생 단 한 번의 산란을 위해 깊은 바다로 떠나는 신비로운 생명입니다. 어쩌면 장어 양식이 이렇게 어려운 건 인간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 놓은 생명의 비밀이 그만큼 정교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완전한 장어 양식의 시대가 열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 장어를 자연에서 데려오지 않고도 이 맛있는 여름 보양식을 즐길 수 있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장어는 여전히 인간에게 가장 흥미로운 수산 과학의 숙제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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